[철태만상] 문화공간의 부활
[철태만상] 문화공간의 부활
  • 김종대
  • 승인 2020.01.20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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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시市에 있는 쁘렝땅 백화점
클리시市에 있는 쁘렝땅 백화점. 사진=김종대

“왠 고수들이 이렇게 많아” 파리에서는 건축에 문외한이라도 입이 딱 벌어진다. 고궁만이 아니라 파리의 집들은 2~300년된 바로크풍의 석조건물이며, 철구조물로 건설된 현대식 건물도 눈에 띄게 많다.

클리시市에 있는 쁘렝땅 백화점<사진> 물류 저장 빌딩은 H빔을 사용한 철구조 건축물로 1910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이음 마디는 리벳으로 고정시켰다. 지금은 다국적 기업이 이 건물을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몇 걸음을 옮기다 보면 건물 벽에 부착된 프랑스인의 자존심을 만난다. 소르본 대학으로 향하는 길목의 평범한 집 벽에는 “1944년 8월27일 파리 해방을 위해 싸우던 17세의 학생 ‘로베르 드 세마르’ 전사하다”는 명패가 붙어 있다. 바로 옆에는 ‘브라스리’라는 맥주집(선술집)이 허리를 맞대고 있다.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프랑스인들의 나라사랑과 자유가 엿보인다.

골목길에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개와 고양이의 오물 수거용 철봉과 독특한 디자인의 재떨이가 또 흥미를 끌게 한다.

“참 별걸 다 만들었네...” 헛소리가 툭 하고 튀어 나오지만 도로 곳곳에 버려진 수 많은 담배꽁초를 대하는 순간 파리를 다시 보게 된다. 땅에 떨어진 파리시민의 문화의식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오르세 미술관 내부는 건축물의 높은 지붕과 벽체를 철강재로 만들었으며, 이것은 미술품과 잘 조화되어 있었다. 원래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에서 오를레앙을 오가는 기차역이었다. 1900년에 이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나 객차가 8칸 밖에 들어 갈 수 없는 짧은 플랫폼이란 단점과 파리 곳곳에 새로 건축된 기차역에 밀려 1939년에 폐쇄되었고 파리시는 재활용 방안 공모를 통해 미술관으로 바꾸었다. 

파리시가 공모한 재활용 방안은 이탈리아 여성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의 아이디어였다. 오르세 기차역이 미술관으로 부활한 것은 1986년이다. 그 이전까지 오르세 미술관은 1848~1914년까지의 미술품을 감상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철로를 가로질러 설치된 철강 구조물에는 ‘밀레의 이삭줍기’를 비롯해서 1875년에 그린 폴 고갱의 ‘눈 내리는 센강의 이에나 다리’ 등이 걸려 있다.

이 미술관에서는 강렬한 화풍의 고갱 작품이 아니라 부드럽고 고요한 풍경화를 볼 수가 있다. 흐리고 어두운 하늘과 한적한 강변의 모습, 앙상한 겨울나무, 강변에 떠있는 몇 척의 배와 농가의 풍경은 센강 주변의 옛날 풍경을 그린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철강산업이 만든 문화 공간의 효용성을 새삼 느끼게 하고, 철강재로 만든 건축물은 ‘네버엔딩’ 된다는 사실에 작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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