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다산 정약용, 떳떳하고 남 탓하지 말라
[김진혁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다산 정약용, 떳떳하고 남 탓하지 말라
  • 김진혁
  • 승인 2024.04.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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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행정학 박사)
김진혁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대표 (행정학 박사)

불행이나 어려움에 마주쳤을 때 “내 탓이오”라고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거나 운명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본성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고 일러둔 선악과를 왜 따 먹었느냐?”라고 묻자 “하와 권유 때문입니다”라고 돌려댔다. 그 결과 낙원에서 쫓겨났다. 남 탓을 함으로써 스스로 변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남 탓하는 해악은 그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인 신흠(申欽, 1566~ 1628)의 글 ‘뜻밖에 오는 재앙에 관한 설’에서 누구도 탓하지 말라고 경계한다. “재앙을 만날 만한 아무 이유가 없는데 재앙을 당하는 것은 일이 변했기 때문이다. 연못에 사는 물고기가 재앙을 입은 것은 성문에 불이 나서 연못 물을 길어다 불을 끄는 바람에 연못 물이 바닥나 물고기가 죽었다. 한단이 포위를 당한 것은 노나라의 술이 싱거웠기 때문이며, 문왕이 유리에 갇힌 것은 구후가 다투었기 때문이다”

남 탓하면 자기만 손해가 되는 것은 첫째,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메타인지를 잃는다. 남 탓을 한다고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을 낮춘다고 실제로 남이 낮춰지지도 않는다. 둘째, 자신의 잘못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셋째, 스스로 발전할 기회를 놓친다. 공자는 “잘못을 군자는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는 말 처럼 자기반성과 책임 인정이 그만큼 어렵다.

조선 개혁 사상가 정약용은 1836년 4월 7일, 향년 73세로 별세했다. 16년째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이 큰아들 정학연에게 보낸 편지 답장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천하에는 두 개의 큰 기준이 있다. 하나는 ‘옳고 그름의 기준(是非之衡)’이고,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의 기준(利害之衡)’이다. 이 두 개의 큰 기준에서 네 개의 등급이 생겨난다. ‘옳음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守是而獲利)’이 가장 으뜸이고 다음은 ‘옳음을 지키지만 해를 입는 것(守是而取害)’이다. 그다음은 ‘그릇됨을 따라가 이로움을 얻는 것(趨非而獲利)’이며 가장 낮은 것은 ‘그릇됨을 따르고 해를 입는 것(趨非而取害)’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긴 유배 생활에 못내 마음이 아파 당시 권력에 앉아 있던 친척에게 사정을 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는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다산은 아들의 제안에 단호히 거절하고 사소한 일로 절개를 잃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집에 못 돌아가는 것이 분명 큰일이다. 하지만 죽고 사는 일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다. 사람이란 경우에 따라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택해야 할 때도 있다.”

다산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세상에 떳떳할 수 있었다.

유배 생활 중 가장 걱정되는 건 자식의 교육이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성장하는 자식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했다. 그래서 늘 독서를 강조하고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보낸 편지 곳곳에 강조했다. 독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맑은 일이다. 천지간에 의롭게 서서 의지해야 할 것은 오직 글쓰기이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편지로나마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다.

“뜻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 재난을 당하더라도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사나이의 가슴 속에는 항상 가을 때가 하늘을 치솟아 오르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눈으로는 세상을 작게 보고, 손바닥으로는 우주를 가볍게 여겨야 한다.” 아들 정학유에게 보낸 글 일부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일 할 때 먹고 사는 문제를 핑계 삼아 불의를 선택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 먹을 것도 함께 준다는 믿음에서다.

“공직을 수행함에 백성들의 마음에 어긋나지는 않는지를 두려워하라. 일찍이 공자께서도 군자의 ‘삼외(三畏)’를 경외하는 것이 있다.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며,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하라.”

보통 사람은 현실과 타협하며 산다. 대의명분과 소명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무릎 꿇지 않고 살아가기가 어렵다. 정의란 위인전이나 역사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정의롭게 살면 너무 피곤해진다는 현실론을 앞세운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비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기죽지 않았으면 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인생 너머에 더 좋은 곳으로 향하는 여정이 남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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