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태만상] 정글의 법칙
[철태만상] 정글의 법칙
  • 김종대
  • 승인 2019.12.1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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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페로타임즈 대표 발행인
김종대 페로타임즈 대표 발행인

세계 철강 강자들의 ‘부침의 역사’는 정글의 법칙과 다름없다. 독일 뒤스부르크 제철소는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최강의 철강기업이었다. 지금은 공원으로 전락했다. 옛 역사를 들춰보면 철강 산업의 빛과 그림자가 드러난다.

19세기 중엽, 산업화의 바람은 잠자던 도시 뒤스부르크 북부를 흔들어 깨웠다. 아우구스트 티센(August Thyssen)이 소유하고 있던 광산 인근에 1901년부터 광산업 주식회사로 하여금 마이더리히(Meiderich)에 용광로를 짓도록 한 데서부터 뒤스부르크 제철소 이야기는 시작된다.

프리드리히 티센 코크스 제조소(아우구스트 티센의 아버지)에서 생산된 코크스가 공중케이블카를 타고 마이더리히의 용광로까지 운송되던 시대의 뒤스부르크는 독일 경제 부흥의 대명사였다. 그렇게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내는 동안 케이블카의 자일도 제 몸을 아끼지 않았다. 풍부한 석탄을 캐는 일은 한국인 파독 광부들의 몫이었다.

1964년 12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순방 중에 광부들을 만나서 격려의 말을 하다가 “이게 무슨 꼴이냐”면서 눈물을 흘렸던 곳도 뒤스부르크 광산이다. 5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철강 강국으로 우뚝 섰고, 독일의 마이더리히 제철소의 용광로(1985년)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강적 포스코의 등장이 원인이다.

제 역할 수행이 어려운 마이더리히 제철소는 용광로의 불을 끄고 ‘공원’이 들어 설 수밖에 없었다. 낙후된 설비와 제조원가 경쟁력이 낮았던 이유다. 스페인의 빌바오는 철강, 조선 중심의 도시였다. 1980년 불경기를 맞아 쇠퇴했다. 철강공장이 있던 자리에 1억5000만 달러를 들여 미술관(미국 프랭크게리 설계)을 만들었다.

1997년 완공된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지붕은 구겨진 종이같은 모습의 멋진 메탈플라워가 일품이다. 매년 구겐하임에는 1천만 명의 관광객이 오고, 수천 억 원의 경제 효과를 보고 있다. 낙후된 철강도시를 예술과 낭만이 넘치는 도시로 일신 한 것을 일명 ‘빌바오 효과’라고 부르게 됐다. 스페인 철강의 몰락 역시 경쟁력 저하가 원인이다.

미국 피츠버그는 철강과 케첩의 도시에서 엔디워홀 뮤지엄, 팝아트 엘비스 마릴린, 나오미 캠벌 등 앤디워홀의 익숙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예술의 도시로 바뀌었다. 철강 산업의 주도권을 잃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과격한 노사투쟁이었다. 이제 피츠버그에서는 카네기의 이름을 빼고는 철강을 찾아보기 힘들다. 타란토는 이탈리아 최대의 제철 공장이있던 철강도시이자 해군도시였다. '굳건한 도시'라는 뜻의 타란토(Taranto) 폴리아 지역은 철강 산업이 활황을 보였던 곳이지만 지금은 고대 그리스 도자기를 연구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이제 쇳물이 넘쳐나는 철강생산 현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서구라파의 철강기업들이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철강산업에서의 정글의 법칙은 노후설비, 인건비의 상승, 노사분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저하, 자국내 철강수급 등을 얼마나 헤쳐 나가느냐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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