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l&Life] 造船의 장밋빛...크루즈船과 해양플랜트 (下)
[Steel&Life] 造船의 장밋빛...크루즈船과 해양플랜트 (下)
  • 김종대
  • 승인 2019.04.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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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조선 산업의 주도권은 일본-한국-중국으로 이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영원한 강자는 없다.

그 옛날 선박건조의 강자였던 유럽기업들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인다.

선박역사를 들먹이며, 화려했던 범선을 복구하여 전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스웨덴 범선 ‘예테보리호’ 복원

2005년 10월 스웨덴 ‘예테보리’ 항에 입항한 1척의 범선이 복원되었다. 이 범선은 18세기 유럽 조선소들의 유구한 역사와 선박 건조능력을 살필 수 있다. 1745년 9월 중국여행을 다녀오다 예테보리 항 인근에서 침몰했던 스웨덴 동인도회사의 무역선 복원은 ‘볼보’의 후원으로 완성됐다.

범선의 이름은 ‘예테보리’호. 복원된 범선은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거쳐 인도양을 횡단하고 중국 상하이까지 1년 7개월의 시험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18세기에 만들어진 선박의 우수성을 증명했다. 이 범선은 세계 조선 산업을 석권했던 과거의 향수를 달래기 위한 전시품 같지만 깊은 속내는 알 길이 없다.

‘에테보리’는 ‘말뫼의 눈물’로도 유명하다. 스웨덴이 자랑하던 ‘코쿰조선소’의 갠트리 크레인(골리앗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현대중공업이 팔려 나가자 말뫼 주민들이 눈물을 흘린 장소가 바로 ‘예테보리’ 항구이다.

1974년에 건조된 갠트리 크레인의 폭은 165m이다. 높이는 45층 빌딩과 비슷한 138m나 된다. 상판에는 버스 4대가 지나갈 수 있다. 한 번에 1,500톤을 들 수 있었다. 이 크레인이 움직이는 레일은 710m이고, 75척의 선박을 건조했다고 한다.

2005년 복원된 예테보리호 사진=나무위키

 

◆ 중국 ‘정화선단’...배 길이 150m

중국은 선박 건조 능력이 가장 뛰어났던 국가였다. ‘담론’(신영복)에는 “중국의 정화 선단은 세계 최고의 항해술 보유 국가였다”고 일러준다. 15세기경 유럽은 인도보다 평균 생활수준이 낮았고, 명나라 정화의 함대는 대선단이었다.

정화 함대의 첫 출항은 62척이 출발했다. 승선 인원은 2만7천800명이었다.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일곱 차례나 왕래했다. 함대의 규모도 대단했다. 본선은 길이 150m, 폭60m, 높이가 9m나 되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렇게 큰 배가 만들어 졌을까하는 의문이 들지만 ‘컬리컷 항에 13척의 중국배가 들어와 있었다.’는 이슬람 지리학자 ‘바투타’의 글로 증명됐다고 서방 언론이 보도했다. 또 400명이 탈만한 대형 선박이란 사실도 1957년 남경 교외에서 84톤급(길이 150m, 폭62m)의 보물선 키가 발견되어 입증됐다.

정화선단.사진=나무위키

19세기에 영국 함대가 나오기까지 정화 함대는 세계 최대의 함선을 보유한 국가였다는데 이 함대의 임무는 황제의 선물을 실고 인도나 아프리카로 항해하여 서로 물물교환을 했다고 한다. 유럽 국가들이 신대륙을 식민지화 했던 침략과는 그 격이 달랐던 것이다.

중국 명나라 선단의 항해는 거기까지였다. 대항해시대의 주도권은 스페인과 유럽으로 넘어갔다. 해외 원정을 주도했던 환관 세력이 몰락하고, 유교를 숭상하던 관료들이 집권하면서 해상보다는 대륙국가의 모델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중국이 해상권을 주도했다면 세계지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어떻든 중국은 바다를 무시했다. 자국민의 해외 진출도 막았다. 배를 파괴해서 땔감으로 쓰기도 했다. 아예 해군을 육군에 전환 배치하는 정책도 단행했다. 세계를 휘젓고 다니던 중국의 발전된 조선 산업이 후대로 계승시키지 못한 원인이다.

이후로 중국의 조선 산업은 사장(死藏)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대신들이 이순신 장군이 지휘했던 수군을 육군에 흡수 시키려했던 일도 아마 중국을 벤치마킹 했는지 모를 일이다.

◆ 美 과자처럼 찍어낸 ‘리버티선박’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U보트는 미국 상선을 격침시키는 ‘물속의 귀신’이었다. U보트는 미국에서 군수물자를 잔뜩 실고 유럽으로 향하는 상선들을 여지없이 격침 시켰다. 연합군은 U보트의 어뢰를 피하지 못한다면 전쟁에서 패 할 수밖에 없었다.

고심 끝에 연합군은 U유보트가 파괴하는 화물선보다 더 많은 화물선을 만들기로 한다. 바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전시 표준선 ‘리버티선’이다. 이 선박은 미국 헨리 카이저가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다. ‘리버티선’은 카이저의 4개 조선소를 포함한 미국 6개 조선사에서 2,700여척이나 만들어졌다.

이 배는 1만920톤의 화물을 실고 시속 11노트로 1만7000해리를 갈 수 있었다. 건조 비용은 1척당 200만 달러였고, 평균 10일 만에 배를 만들어 냈다. 8시간 반 만에 한 척을 완성시킨 적도 있었다. 미국 언론들은 리버티 선박을 ‘과자처럼 찍어 낸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조선소들이 대량의 선박건조를 소화하지 못했다면 승전고는 독일 몫이 될 뻔 했다.

전쟁 때 사용하고 남은 ‘리버티선박’은 선박업자들에게 불하되었다. 헨리 카이저가 미국의 철강 생산 능력과 조선기업들의 선박 건조능력을 알지 못했다면 꺼내기 어려웠던 일이다.

현재까지 사용되는 리버티선 SS 존 W. 브라운
현재까지 사용되는 리버티선 SS 존 W. 브라운. 사진=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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