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현의 인문산책] 독서력으로 동아시아 흐름을 꿰다①
[박기현의 인문산책] 독서력으로 동아시아 흐름을 꿰다①
  • 박기현
  • 승인 2019.10.2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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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최고의 지식인 신숙주, 순리 적응한 학자·관료로 일신
일본정세정통 해동제국기 편찬...조선 초 외교정치사 디딤 역할

일본을 이해하는 책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도서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다. 국내작가로는 일본에서 더 많이 팔리고 유명했던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다. 그러나 이보다 500년 이상 앞선 일본정보서는 바로 <해동제국기>이다.

이 책은 세조의 문화적 업적을 완수한 15세기 최고의 지식인 신숙주의 작품이다. 후대에 ‘숙주나물’이라는 표현을 빌어, 사육신을 변절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신숙주는 사실 정치적 욕심보다는 순리에 적응해 가는 학자와 관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세종의 한글 창제와 여진족 진압 포용, 일본과의 교린이라는 문무의 놀라운 업적을 이뤄낸 신숙주 리더십의 핵심 역량은 바로 독서력에 있었다. 그가 보여준 독서에 대한 열정과 리더십의 실체를 살펴본다.

일본 정체 파악, 후대에 경고하다

그의 빼어난 장점은 동아시아의 세계사적 흐름을 한 눈에 꿰고 있었다는 점이다.

<해동제국기>는 조선 1471년(성종 2) 12월에 일본 정세에 정통했던 신숙주가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것이다. 해동제국이란 일본 본국과 일기(一岐), 구주(九州) 및 대마(對馬) 양도와 유구국(오키나와)의 총칭이다.

그에 앞서 신숙주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학자와 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문사들이 앞을 다투어 그에게 몰려왔다. 해동의 젊은 학자에게 시와 글씨 한 점을 얻어가려는 문사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자 신숙주는 이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일본을 속속들이 파악했고, 그 경험을 자신의 책에 반영한 것이 <해동제국기>였다.

해동제국기
해동제국기

신숙주는 “일본은 회유가 쉽지 않으므로 한 번이라도 그 기미를 잃으면 남쪽을 지키기 어렵다”며 “다소 손해 보더라도 화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성종에게 일본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일본과의 화평을 해치지 말도록 충고했다.

그러나 후대의 왕들이 이를 지키지 못해 결국 임진왜란을 겪고 이후 구한말의 한일합방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연려실기술은 신숙주의 외교적인 능력과 외국어실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공이 한, 왜, 몽고, 여진 등의 말에 통했으므로 때로는 통역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뜻을 통하더니 뒤에 손수 모든 나라의 말을 번역하여 바쳤으니 이에 힘입어 스승에게 일부러 배울 필요가 없었다.”

신숙주는 7개 국어에 능통한 외교관이었다.

세종은 중국의 문장가이자 학사로 소문난 예겸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자 신숙주, 성삼문을 내보내 그와 학문의 깊이를 겨루게 했다. 당시 명나라 최고의 학자였던 예겸은 조선에 무슨 인재들이 있느냐며 거만을 떨다가 신숙주의 학문적 깊이에 감탄하고는 귀국하면서 신숙주를 중국의 굴원(전국시대 최고 의 비극시인)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2편에서 계속-

※ 박기현 작가는...

안동 출신인 박기현 작가는 우리 역사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힘써왔다. 《조선의 킹메이커》를 집필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LG그룹 홍보팀장, 국제신문사 기자, 〈도서신문〉 초대 편집국장, 〈월간 조선〉 객원 에디터, 리브로 경영지원실장,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1991년에 문화정책 비평서 《이어령 문화 주의》를 출간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류성룡의 징비》 《조선참모 실록》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 《KBS HD 역사스페셜》(제5권) 《악인들의 리더십과 헤드십》(동양편, 서양편) 등의 역사서와 《한국의 잡지출판》 《책 읽기 소프트》 등의 교양서 10여 편, 《러시안 십자가》 《태양의 침몰》 《별을 묻던 날》 등의 장편소설 및 여러 권의 번역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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