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은의 의학이야기] 보는 것과 아는 것
[김해은의 의학이야기] 보는 것과 아는 것
  • 김해은
  • 승인 2019.09.24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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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감각이 아니라 경험과 상상에 의한 지적능력
의학은 보고 아는 능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에서 시작
만성질환 알고 극복 위해 우리를 돌아보고 상상력을 더해야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 (도봉구의사회 부회장)

인류의 발전은 결핍을 충족하는 욕구로부터 시작된다.

나무에서 잘 지내던 인류의 조상들은 기후변화로 숲이 사라지자 식량을 구하기 위해 땅으로 내려온다. 이제 과일과 견과류는 물론 키 작은 줄기식물의 뿌리까지 먹어야 했다. 땅으로 내려온 인류는 체구가 1m 이하로 맹수의 한 끼 식사에 적당했다.

급기야 피난처를 제공해 주던 큰 나무가 사라지고 사바나의 초원만 남게 됐다. 맹수의 공격을 피하려면 동료들이 먹이활동을 하는 동안 경계를 서야 했다. 이때부터 멀리 보는 능력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었다. 나무에서 살다 보니 매달려야하는 팔과 다리는 진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맹수와 대적할 수 있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 전무했다.

멀리 그리고 넓게 보려면 지면에서 보다 높게 있어야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초원의 넓은 지형에 적응하려면 허리를 펴고 수시로 걸어야 했다. 이빨과 발톱을 대신할 무기를 갖추기 위해 도구가 필요했다.

도구를 다루는 능력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처음에 단순한 몽둥이에서 날카롭게 잘린 나무에 짐승들이 찔려 죽는 것을 보고 창을 고안해냈다. 돌이 나무보다 더 단단하다는 발견에 상상력을 더해 드디어 석기시대가 시작됐다.

번개로 인한 숲의 화재는 생고기보다 맛있는 익힌 살코기를 먹게 만들었다. 맹수의 타버린 사체는 불의 위력을 경험케 했다. 보는 능력은 시각이라는 감각이다. 아는 능력과는 다르다. 안다는 것은 감각이 아니라 경험과 상상에 의해 얻어진 지적 능력이다. 불의 위력이라는 경험에 상상력을 더한 인류는 불에서 화약, 원자력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의학도 보고 아는 능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에 의해 시작됐다. 서양의 고대와 중세 의학은 갈레노스의 체액설이 주도하였고 동양에서는 한의학이 주도했다.

서양의학은 보다 멀리보고 깊게 보는 능력을 획득하게 하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발견하면서 급속하게 발전했다. 미지의 세계는 멀리 거시의 세계뿐만 아니라 미시의 세계에도 있었다. 망원경을 발명한 서양인들은 멀리 보고 멀리 갔다. 현미경으로 깊고 세밀하게 인간을 관찰했다.

거시 의학은 해부학이 주도하면서 외과적 수술을 발전시켰다. 미시 의학은 내과 계를 이끌면서 보이지 않던 조직과 세균을 보게 만들었다. 인간을 죽음으로 몰았던 수많은 원인을 보면서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의학에서 미시의 세계는 아직도 무궁무진하여 현재 대부분의 의학연구는 조직학, 면역학, 미생물학, 분자생물학, 생화학 등 미시 세계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보는 능력이 발견을 주도했지만 듣는 능력은 발전을 주도했다. 집단생활이 필수인 인류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웃이 경고한 경고음을 듣고 그들이 획득한 지식과 지혜를 귀담아 듣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었다.

인류는 경청과 자기부인의 숙고에 의해 변화되고 발전한다. 앞으로 다루고자 하는 만성질환의 정체를 알기 위해 우리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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