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토픽] 헝다그룹 쉬자인... 中 철강 샐러리맨 신화의 끝자락
[인물토픽] 헝다그룹 쉬자인... 中 철강 샐러리맨 신화의 끝자락
  • 임한상
  • 승인 2021.09.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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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7일 헝다그룹(恒大·에버그란데) 창업자인 쉬자인(许家印)이 회장직에서 사임했다. 디폴트 위기에 몰린 중국 2위 부동산개발 업체 헝다그룹은 현재 경제지면의 단골메뉴이다. 한국판 '대마불사의 몰락' 대우사태를 연상시킨다. 본인들의 장기인 부동산개발에서 벗어나 무리하게 빚을 얻어가며 전기차 등 미래 유망사업으로 그룹사업을 확장한게 결국 화근이 됐다. 철강 샐러리맨에서 한때 중국 부호 1위 및 10년 연속 중국 최대 기부자에 이름을 올렸던 쉬자인의 인생을 들여다 보자.

쉬자인은 1958년 10월 9일생으로 허난성(河南省) 타이캉현(太康县) 농민촌 출신의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어렸을 때(한 살 무렵) 병에 걸린 어머니를 잃고 근면한 할머니 손에서 컸다고 전해진다. 그는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어렵게 살았지만 우한철강학원 금속공학과에 입학하며 입신출세의 꿈을 키워나간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목표였던 지역 철강회사에 입사한다. 성공에 대한 집념이 강했던 그는 철강 압연 열처리 공정 현장에서 리더십을 보이며 불과 몇 년 만에 공장장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철강회사에 있으면서 건설회사에 강건재를 납품하며 중국 부동산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본 그는 선전(深圳)시에 있는 부동산 회사로 이직한다. 그 곳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 받으며 사장까지 되지만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1996년 39세의 나이에 자신의 기업을 창업하며 독립한다.

영문명으로 Evergrande인 그룹 헝다는 "언제나 크고 장구하다"는 뜻이다. 중국인들 가슴에 있는 신화적 스토리에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까. 쉬자인은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최고가 돼야 한다"는 자신의 인생 철학을 담은 것이라 말한다.

쉬자인은 독보적인 전략가였다. 땅값이 비싼 대도시 말고 땅값이 저렴한 지방 소도시 택지개발에 공을 들였다. ‘최소의 돈으로 많은 땅을 확보해 기회를 엿본다’는 경영술로 중대형 면적 위주의 중국 부동산 트렌드에서 벗어나 '작은 면적, 낮은 가격'인 저가소형 주택 상품으로 승승장구하며 중국 굴지의 부동산 업체가 된다.

중국 부동산 시장이 활력이 넘쳤던 2017년, 그는 드디어 중국 제1위 부자로 등극하며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다. 철강 샐러리맨에서 시작하여 일군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다. 쉬자인은 중국 정부로부터도 인정받는 기업가였다. '홍색 자본가'라는 칭호를 얻으며 총 146억위안, 우리 돈으로 2조66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며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연속 중국 최대 기부자로 이름을 올리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그는 작년 10월 중국 전역에 생중계된 건국 70주년 열병식에 초대받아 천안문 성루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지난 7월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도 초청받는 중국 내 몇 안되는 기업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작년부터 중국 내 가파른 집값 상승과 과도한 기업 부채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은행 대출을 죄자, 자금난에 빠졌다. 무리하게 빚을 얻어가며 문어발식으로 그룹 미래사업을 키운게 패착이 된 것이다. 전기차·생수·테마파크·보험 등 소위 돈이 될 만한 유망사업에 쉬자인 특유의 경영 승부수를 던진 걸로 보이는데 과유불급이었다. 글로벌 신용사들은 그룹 헝다에 '투기'등급 딱지를 붙였다. 자금경색에 빠진 중국 헝다그룹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 정부가 이 '홍색 자본가'를 살려 줄 것인가? 아닌가? 현재 국내외의 초미의 관심사다.  

쉬자인은 철강회사 시절 동료로 만난 부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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