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은의 의학이야기] 장수의 비결…육체의 건강보다 마음의 습관에 있다
[김해은의 의학이야기] 장수의 비결…육체의 건강보다 마음의 습관에 있다
  • 김해은
  • 승인 2021.09.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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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점유를 다투다 단명한 인류, 식물에게 배워야
친절‧공감‧공동체 참여하면 100세 장수 가능성 커져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  (대한의사협회 정책자문위원)
김해은 한사랑의원 원장 (대한의사협회 정책자문위원)

장마철을 지나 8월이 되면 창덕궁 후원을 걷는다. 둘이 갈 때도 있지만 혼자 비원의 초록색 길을 걷는 것도 좋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혼자 쓸모없는 생각에 깊이 빠져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둘도 없는 곳이다. 우리나라 궁들은 왜 궁 안에 있는 한 단위의 건물군마다 철저히 담으로 두르고 안과 밖을 철저히 구분해야 했을까? 왜 들어가는 정문은 하나인데 나오는 뒷문은 두 개일까? 기와집 추녀 끝은 어떻게 저리 저고리 소매처럼 예리하게 휘어졌을까? 첩첩 궁궐 안에 보호되는 임금의 답답함은 어떻게 해소했을까? 궁궐에는 왜 재래식 화장실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을까?

창덕궁 후원의 백미는 대궐을 지키는 아름 들이 고목의 자태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700년을 산 당나무와 수령이 삼백 년을 넘긴 향나무이다. 외골을 보강하여 목숨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수목이 장수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식물과 동물의 차이점은 공간의 활용이다. 식물은 일년생인 풀이든 다년생인 나무이든 제자리에서 태어나 살면서 생을 마친다. 동물은 제자리를 벗어나 공간을 이동하면서 새로운 공간의 점유를 확장한다. 제자리에서 삶과 죽음을 맞이하는 식물은 공간을 이동하는 동물에게 편안함과 평안함을 제공한다. 더울 때는 기꺼이 그늘을 제공하고 그들에게 먹고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마련해 주고 털 없는 인간에게 체온을 유지하는 연료가 되었고 심지어 석탄기에 살았던 그들의 조상들은 인류에게 하늘과 지상, 심지어 깊은 바닷물 속에서 공간을 이동하는 연료를 공급한다.

그 자리를 지키는 식물은 죽어도 비명 한마디 지르지 않지만 공간을 움직이는 동물들은 그들이 점유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 발악하다가 죽는다. 식물과 동물은 소멸하면 어차피 그 자리에서 점이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물들이 점유하는 공간이 다르지만 공간을 점유하는 효율성에 따라 생명을 유지하기에 유리하였다.

기르던 강아지가 오래전에 헤어졌던 사람을 기억하고 반가워하는 것을 보면 시간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동물은 그들의 시제가 현재에 머물러있다. 대과거, 과거, 현재, 미래, 대미래를 구분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사람의 공간에 대한 추억은 절대적 시간이 아닌 당시의 상대방과 관계에서 공간의 위치와 함께 그들을 기억한다.

존재가 확인된 인간 중 최고 장수는 빈센트 반고흐의 고향인 프랑스 아를에 살았던 잔 칼망의 122년 164일이었다. 대부분 100세를 넘겨서 산 장수인들이 비결을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그녀는 특별히 장수의 비결을 말하지 않았다. 장수하는 비결을 물을 때마다 어깨를 으쓱하고 “하느님이 자신을 데려간 것을 잊으신 모양입니다.” 말하곤 했다. 그녀는 와인과 담배까지 마다하지 않고 사람 만나기를 즐거워하는 제멋대로 사는 낙관주의자였다.

인간의 최대 수명은 115세에서 왔다 갔다 한다. 장수의 비결을 살펴보면 운동을 많이 하여 체지방을 줄이고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섭취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키우고 더 나은 마음의 습관을 들이며 더 친절해지고 더 공감하며 공동체에 참여하면 100세까지 장수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생애 초기에 좋지 않은 생활방식을 택하면 텔로미어(말단소체)를 손상시킬 수 있는데 텔로미어란 염색체 끝에 있는 덮개로 유전자의 훼손을 막아 준다. 텔로미어의 손상은 결국 노년에 수명을 단축하는 질병에 더 많이 걸리게 만든다. 마음에 기초한 수명 연장이라고 볼 때 오늘날 청장년층의 상황이 베이비 붐 시대보다 더 나 빠질 수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우정을 깨뜨리고 고독감이 만연케 하며 공감 수준을 떨어뜨린다.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마바는 “우리는 공감을 단절시키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운동과 건강식품이 수명 연장과 관계있는 것은 수치로 쉽게 계산이 가능하다. 그 외의 인자는 수치로 환산이 어려우나 헌신적인 애정 관계는 사망 위험도를 49%까지 낮출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한여름에 잠시 공간을 점유하다가 살다 간 동물들에게 기꺼이 그늘이 되고 지붕과 벽을 제공하는 수목들처럼 서로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면 공간의 점유를 다투다 단명한 인류도 어느 정도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겠다는 쓸데없는 사색에 빠지는 데는 사람이 드문 여름 창덕궁 후원만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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