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造船의 미래⑪] RG 발급 중단…중소조선소 몰락 불지펴
[造船의 미래⑪] RG 발급 중단…중소조선소 몰락 불지펴
  • 최현웅
  • 승인 2021.09.0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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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폐업 우려 커지자 피해 방지 위해 은행 결정
中도 韓과 같은 위기 겪자 ‘화이트리스트’ 제도 시행
국가간 경쟁 양상 뚜렷, 적극적인 산업 지원 정책 아쉬워

‘중소 조선소 몰락’의 또 하나의 방아쇠(Trigger)는 ‘선수금 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이다. RG는 무엇인가?

선박은 ‘주문 생산 계약’을 통해 약 2~2.5년에 걸친 설계-생산 과정을 거쳐 고객에게 인도된다. 그런데 제조업체인 조선소는 자재 대금과 설계 및 생산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까? 비용이 막대하여 자체적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우므로 선주가 배의 총 구매 가격을 조선소에 적절한 시점에 분할해서 지급하도록 계약을 한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계약금으로 보통 10~20%, 건조 기간 중에는 주요 생산 절점(Key Event)에 2~3회로 나누어 60%~70%, 마지막 배를 인도받을 때 10~20% 정도를 내는 형태다. 물론 불황일 때는 선주의 입김이 세져 마지막 인도금의 비중을 극도로 높이는 헤비테일(Heavy-tail) 계약이 성행하기도 한다.

- 글 싣는 순서 -

① 조선업의 부활 후판시장 활력...하반기 수요 '맑음'
② '사양산업' 논란, 대체 수단 '無' 시장 수요 충분
③ 한‧중 ‘인건비 격차’ 10년간 2배 유지
④ ‘표준 선박 대량생산’ 일본, 오히려 쇠락
⑤ 한국 미래는 한국의 선택에 달려있다
⑥ 韓中日 조선소, 제주도 반경 600km내 포진
⑦ 조선산업 성공의 키(key)는 '1급 제철소'
⑧ 韓 中 日 조선산업 주도 '다음 주자는?'
⑨ IMF 사태, 성장의 도약이자 몰락의 계기
⑩ 중소 조선소의 몰락 ‘키코’
⑪ RG 발급 중단…중소조선소 몰락 불지펴
 

대선조선 부산 영도공장 전경. 사진=대선조선
대선조선 부산 영도공장 전경. 사진=대선조선

 

선주는 주문한 배를 인도받기도 전에 이렇게 상당한 규모의 대금을 조선소에 선 지급해야 하는데, 조선소가 그 사이에 망하기라도 하면 그 큰돈을 소위 ‘떼어먹게’ 되는 위험이 생기게 다. 이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RG다. 조선소가 계약서에 있는 분할금을 ‘선지급’ 받으려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은행에서 해당 금액만큼의 환급을 보장하는 ‘RG’를 받아 선주에게 제공해야 한다.

RG에는 ‘조선소가 문제가 생겨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은행은 즉시 선주가 선 지급한 분할금을 이자를 포함하여 선주에게 즉시 반환한다’라는 보증 내용이 담겨있다. 은행은 RG 발급의 대가로 조선소로부터 보장 금액의 약 1%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할 때를 대비하여 해당 선박에 대한 선순위 담보를 확보한다. 따라서 선박 건조 계약은 선주와 조선소 양자 간의 계약이라기보다는 선주, 조선소, RG은행 3자간의 계약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또한 선박 계약의 ‘진짜 발효’ 여부는 선박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때가 아니라 바로 ‘RG가 선주에게 발급되어 계약금이 조선소에 들어오는 때’라는 것이 조선 업계의 알려진 비밀이다.

그렇다면 이 RG가 어떻게 한국의 중소 조선소를 몰살시키는 방아쇠가 되었을까? 이를 다루기 전에 경쟁국인 중국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중국은 ‘연안 개발 전략’과 공업화 및 도시화 추진을 위한 ‘농민공 양성 정책’을 기반으로 한 때 조선소가 약 3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조선 산업에 집중 투자를 해왔다. 그러나 슈퍼 사이클 이후 가파른 내리막, 그로 인한 불황의 파고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을 동시에 덮쳤다. 그 결과로 중국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이 진행이 되었다. 현재는 그나마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조선소가 약 50여 개, 그 중 경쟁력을 갖췄다 평가되는 조선소는 약 20여 개 수준으로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한국과 달리 중국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기획되어 실행되었다.

중국 조선소는 국영과 민영으로 나뉘어 있는데, 중국은 경쟁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민영 조선소들을 우선 정리했다. 즉, 중국 정부는 블랙리스트의 반대 의미인 ‘화이트리스트’라는 것을 만들어 제한적인 금융 지원을 시행함으로써 ‘RG를 통제’했다. 각 민영 조선소들을 재무적, 사업적으로 평가했고,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조선소들은 국영 조선소들과 함께 ‘화이트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주었다. 판단은 정부가 하고 금융권은 지침대로 이행했다. 경쟁력이 없는 민영 조선소들은 이렇게 ‘질서 있게’ 정리 되었다. 반대로 경쟁력 있는 민영조선소들은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재정 지원 및 RG가 보장되는 조선소’임을 세계 시장에 알리며 생존 및 발전을 지속해 나갈 수 있었다.

중국 정부는 국영 회사도 그대로 두지는 않았다.중국의 국영 기업은 ‘부도’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부실화된 국영 조선소는 아직 재정상태가 양호한 다른 국영 조선소, 또는 시너지가 나는 국영 해운, 에너지 회사와 합병을 시켰다. 조선 경기 침체가 계속되자 중국 정부는 이런 개별 조선소간 합병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2019년에는 양대 국영 조선그룹인 CSSC과 CSIC를 합병함으로써 ‘더 이상 할 것이 없는 상태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중국은 조선 산업의 부실화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었던 중국 상업 은행에 ‘선박 리스금융 자회사’를 설립시킴으로써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은행들은 이제 조선소에 문제가 생기면 단순히 RG 금액을 선주에 물어주고 부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소극적인 입장이 아니다. 문제가 된 선박은 스스로 인수해 ‘선주로서’ 끝까지 건조를 완성을 시킨다. 그리고 신조 혹은 리세일 시장에 적절한 타이밍에 정당한 가격을 받고 매각하여 은행에 손실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 은행들은 이제 신조 시장에서도 자국 조선소를 지원하는 막강한 해운 금융기관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제는 중국의 ‘선박 리스금융 회사’가 전통적인 ‘유럽 선박 금융 기관’의 역할과 규모를 넘어서서 국제 해운 업계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어땠을까? 시장이 급락해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던 2010년대 중반 경이었다. 이 시기에 거의 모든 중소 조선소들은 재정적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키코로 생긴 빚과 지속된 불황 속에서 재무지표가 악화되고 현금 유동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경영난을 타개하고 자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주’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중소 조선소의 주거래 은행들에게 상급 금융 관리 기관으로부터의 공문이 접수됐다. 공문의 내용은 대강 이랬다. “중소 조선 업계의 부실이 심화되고 있으니 각 은행들은 대출 현황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문제 발생 소지가 있는 여신은 ‘고정 이하’의 등급으로 관리하라.”

사실 공문 내용 자체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금융 감독기관에서 부실 징후가 보이는 산업군의 기업 여신을 철저히 관리해 달라고 한 것이니 말이다. 금융권의 동반 부실 리스크를 막자는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요청이다. 그러나 그 공문 한 장이 결국 ‘한국 중소 조선소 전체’를 고사시키는 결정적 한방이 되었다.

여신은 건전성 분류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의 5단계로 관리된다. 정상과 요주의는 ‘정상 수준’의 여신을 말한다. 고정은 ‘경계성 상태’로 3개월 이상 연체되고 채무상환능력의 저하 요인이 존재하는 여신을, 회수의문과 추정손실은 ‘위험 수준’의 여신을 의미했다.

즉, ‘고정 이하’의 여신은 일단 ‘정상이 아닌 여신’이란 뜻이다. 은행은 ‘고정 이하로 떨어진’ 중소 조선소 여신에 대해 상당 규모의 손실 충당금을 설정해야 했다. 은행의 손익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당시 금융권내에서는“조선소들 때문에 올해 직원들 상여금이 다 날아갔다”라는 말을 돌았다. 그러니, 선박 대금과 같은 큰 금액을 보장하는 RG를 신규로 끊어 준다는 것은 여신 결재라인이나 심사역들이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즉, ‘은행에 엄청난 손실 충당금을 추가로 쌓게 하는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렇게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 조선소들에 대한 시중 은행의 RG가 막혔다.

당시 중소 조선소의 영업 담당자들은 선주나 브로커로부터 계속 이런 이메일을 받으며 시달렸다. “RG가 나올 수 있는 거야? 그게 확정이 돼야 발주를 할 수 있어.” 심지어는 계약 직전까지 갔던 어떤 선주는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다가 며칠이 지난 후 브로커를 통해 답변이 왔다. “미안해, 너도 알다시피 이 프로젝트가 나한테는 엄청 중요한데, 우리 쪽 파이낸싱 은행에서 너희 조선소는 RG가 불확실하니까 중국 국영 조선소 쪽하고 계약하는 조건으로 바꾸자고 해서 그렇게 되었어…,”

앞서 소개한 대로 중국은 살아야 할 조선소를 미리 정해 일부를 살리는 전략을 실행했다. 화이트리스트 정책이라는 매우 일방적이지만 투명한 제도를 통해 ‘이 조선소는 살아남을 조선소’라는 사인을 명확히 시장에 주었다. 그 당시 이런 원칙을 이해한 시장 수요자들은 화이트리스트에 있는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었다.

따라서 한국 중소형 조선소에 RG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수 차례 확인한 브로커 및 선주들은 사업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해 중국의 ‘화이트리스트’ 조선소의 문을 두드렸다. 수 년 후, 한국 중소 조선소가 우위를 점하고 있던 중소형 탱커, 화학제품 운반선, 중소형 컨테이너선, 특수목적선 등의 시장이 하나하나 중국으로 넘어갔다. 엄청난 ‘기회의 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키코와 RG 모두 금융 관련 사안입니다. 그렇다고 “중소 조선소가 금융권 때문에 망했다”라고 단언하는 것으로 문제의 근원을 다 이야기 했다고 볼 수 없다. 금융권은 금융권 나름의 원칙과 제도, 특성이 존재한다. 어떤 경우에 조금 더 도와주지 않았다는 ‘섭섭함’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산업을 망쳤다는 원망은 과한 것이다. 또한 그런 해석은 조선 산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은행들도 제도권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고 매 위기의 순간마다 조선소와 함께 해법을 찾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당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부분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왜 어떠한 정책적 판단이나 조정 없이, 한 산업의 운명을 그냥 금융권의 생리와 판단에 의해 그냥 ‘흘러가도록’ 놔두었을까? 적어도 세계의 1, 2위를 다투는 산업의 중소기업 전체에 해당하는 위기 상황이었다. 종합적이고 선제적인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경쟁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정도라도 한번 살펴보는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의 글로벌 조선 산업은 기존에도 그래왔지만 그간의 장기 불황의 영향으로 국가 간 경쟁의 모습으로 더더욱 변해가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별 업체의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조선 산업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정책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자료: 대한조선학회,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이종무 대우조선해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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