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造船의 미래⑩] 중소 조선소의 몰락 ‘키코’
[造船의 미래⑩] 중소 조선소의 몰락 ‘키코’
  • 최현웅
  • 승인 2021.09.03 0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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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환율 하락 따른 환차손 우려 크자
키코 상품 가입 통해 헷징 시도…초반은 성공적
금융 위기후 환율 고공환율 지속으로 타격 입어

세기말의 불안과 혼란,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며 시작된 2000년대는 미국 9.11 테러와 중동전쟁 등 초대형 악재들로 우울한 출발을 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오히려 최고의 호황을 누리게 되는데, 침체를 우려한 미국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과 1990년대에 이어 지속된 중국의 고속 성장 등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 결과로 해운과 조선 산업은 앞으로는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슈퍼 사이클을 마주했다. 해운 물동량 급증에 선박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각국의 조선소에는 주문이 넘쳤다. 수혜는 공격적인 설비와 인프라 투자를 감행한 한국과, 후발 주자로서 신규 조선 설비를 대폭 늘려 놓았던 중국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이때 한국의 중소형 조선소의 공급 설비도 급속도로 늘었다. 신생 중소 조선소들이 전국 여기저기에서 생겼고 그들도 역시 호황의 물결을 타고 시장에서 순조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슈퍼 사이클’은 그 이름이 가진 의미처럼 오를 때만큼이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들며 조선 산업을 위협했다.

- 글 싣는 순서 -

① 조선업의 부활 후판시장 활력...하반기 수요 '맑음'
② '사양산업' 논란, 대체 수단 '無' 시장 수요 충분
③ 한‧중 ‘인건비 격차’ 10년간 2배 유지
④ ‘표준 선박 대량생산’ 일본, 오히려 쇠락
⑤ 한국 미래는 한국의 선택에 달려있다
⑥ 韓中日 조선소, 제주도 반경 600km내 포진
⑦ 조선산업 성공의 키(key)는 '1급 제철소'
⑧ 韓 中 日 조선산업 주도 '다음 주자는?'
⑨ IMF 사태, 성장의 도약이자 몰락의 계기
⑩ 중소 조선소의 몰락 ‘키코’

성동조선해양이 건조한 MR급 탱커/사진=성동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이 건조한 MR급 탱커/사진=성동조선해양

 

2007년 4월, 이름도 생소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업체인 ‘뉴센추리파이낸셜’이 파산을 신청한 것이 사태의 전초였다. 해를 넘긴 2008년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그해 9월 6일, 미국 재무부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하며 총 2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 자금을 투입을 결정했다.

1주일 뒤, 세계 3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 브라더스를 구제하지 않고 그대로 파산시키기로 결정했다. 이 파장은 미국의 금융권을 넘어 미국의 ‘모기지 채권’에 약 1조 달러 이상을 투자한 각국 중앙정부의 리스크로 퍼져나가 ‘세계 금융 위기’로 발전했다.금융 위기는 그 당시 자유주의 경제학 신봉자(시카고학파)들이 주류였던 미국 금융권의 부조리와 그들이 ‘금융 공학’을 이용해 만든 ‘파생 상품’의 폐해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금융위기’와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인 ‘파생상품’은 모두 한국 중소 조선소의 몰락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한국 중소 조선소의 몰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 결정적인 방아쇠(Trigger)가 있었다. 첫 번째는 ‘키코(KIKO, Knock In Knock Out)’, 두 번째는 ‘선수금 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이다.

첫 번째 방아쇠인 키코에 대하여 살펴보자. 키코는 기업의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한 ‘환 헷지형 통화옵션계약’의 이름이다. 키코는 ‘금융 공학’을 이용하여 만든 ‘파생 상품’이다. 앞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에는 조선업계가 엄청난 환차익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의 조선업계는 거꾸로 달러당 1200원대에서 계속 점진적으로 하락하여 900원대에 이른 환율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이 상황에서 원화 가치 상승에 의한 환율의 추가 하락은 조선소로서는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환율 하락 리스크 방지를 위해 적극적인 환 헷지 정책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키코다.

키코는 일반적인 환헷지 옵션 상품과는 매우 다른 상품이었다. 즉, 일정 범위의 계약 환율 범위 내에서는 이익을 볼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기업의 일방적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설계된 상품이었다. 먼저 환율 하락 상황에서는 일정 범위의 환율에서만 헷징이 가능하고 약정 환율의 하한을 한번이라도 넘어갈 경우 계약 자체가 무효(Knock-out)가 되어 환율 하락에 대한 손실을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환율 상승 시에는 더욱 심각한데, 계약된 환율 범위의 상한을 넘어가는 상황(Knock-in)에서는 계약금액의 ‘몇 배(계약에 따라 2~5배)’를 시중 환율(높은 금액)로 사서 약정 환율(낮은 금액)로 팔아야 해서 손실이 더욱 급격히 증가했다. 보통 대기업들은 이런 상품의 위험성을 검토할 수 있는 조직과 내부 규정이 있기 마련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오너와 재무담당 임원 등 몇 명의 신중하지 못한 의사결정이 쉽게 작동을 할 수 있는 구조다.

게다가 키코는 수주에 필수적인 ‘RG’ 발급 주거래 은행들이 적극 권한 상품이었다. 그리고 ‘계약 범위를 벗어난 환율’은 수년간 패턴을 볼 때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소 조선소들은 위험성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수수료가 없는 신통한 헷지 상품’이라고 포장된 키코를 계약했다. 심지어 일부 중소 조선소는 욕심을 내 필요 이상의 ‘오버 헷지’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가입 초반에는 정상 계약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환율 덕분에 일부 이익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달러 당 800~900원 대에서 횡보하던 원-달러 환율을 1500원대까지 수직 상승시켰다.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1300원~1600원을 오가는 ‘환율 고공행진’의 상황을 만들었다. 즉,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버린 것이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손해는 723개의 수출 중소기업에서 약 3조 3000억 원의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에서 외환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수출기업은 조선 산업이다. 다시 말해, 이 피해 금액의 상당액이 중소 조선소에서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2019년 모 일간지의 기사에 의하면, 금융감독원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재무제표에 반영된 15개 중소형 조선소의 2008년 이후 3개년 키코 손실 추정액만 6조7000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당시 거의 모든 중소 조선소들이 키코의 피해를 입었고, 피해 금액은 상상을 초월했다. 슈퍼 사이클의 정점에서 수주를 한창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조선소가 환 헷징을 주로 키코로 했다면 엄청난 피해 금액이 발생될 수밖에 없었다.

중소 조선소들은 단순히 환차손을 조금 덜 보기 위해 가입했던 금융 상품 키코로 인해 십 수 년이 지나도 갚지 못할 엄청난 빚을 지게 됐다. 이 빚으로 조선소는 신용도가 급격히 떨어졌고 자체 자금 조달이 불가해져 은행 관리 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 빚은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고비 때마다 번번이 조선소의 발목을 잡아 문을 닫기까지 했다. 결국 중소 조선소들의 회생의 기회를 꺾어버리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조선업계는 ‘그래도 거래 은행들은 막대한 이익이 났을 테니 국가가 중재해서 대책을 세우면 되지 않나?’라며, 정부의 지원을 희망하기도 했다. 금융업계는 ‘국내 은행들은 파생상품 거래로 수수료만 챙겼지 대부분의 이익은 아마도 국내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변명했다. 외국금융기관에 고스란히 이익을 넘겨준 것이다.

만약 중소 조선소들이 당시 키코를 가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금융위기 때 갑자기 오른 환율 덕분에, IMF 때의 대형 조선소들처럼 르네상스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오늘날처럼 이렇게 처참하게 전멸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자료: 대한조선학회,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이종무 대우조선해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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