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造船의 미래⑨] IMF 사태, 성장의 도약이자 몰락의 계기
[造船의 미래⑨] IMF 사태, 성장의 도약이자 몰락의 계기
  • 최현웅
  • 승인 2021.09.01 0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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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줄줄이 무너지는 상황속에서도 조선업은 호황
연이은 수주 덕분에 국내에 거액의 달러 벌어들여와
단일업종 최초로 OECD 가입, 한국보다 6년 앞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IMF 사태)는 그 시대를 겪었던 많은 국민들에게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느닷없이 터진 ‘국가 부도 사태’에 멀쩡했던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수많은 직장인들은 ‘명예롭게 퇴직한다’라고 포장되어 일자리를 잃었다. 모든 기업들이 망할 수 있다고 했고, 심지어 삼성전자조차 수 시간 부도 상황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을 만큼 대한민국 전 산업이 붕괴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내 조선소는 무너지지 않았고, 인력 채용의 문도 닫지 않았다. 조선소 취직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모 그룹 해체로 겪으며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들어갔던 대형 조선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워크아웃 조기졸업’을 선언하고 사명을 바꾼 뒤 엄청난 규모의 경영 혁신과 대규모 IT인프라 투자를 단행했다. IMF 사태를 벗어난 후에 드러났지만, 당시 대부분의 조선소들은 ”조용히 웃고 있었다“고 했다. 국가 전체 금융과 산업이 휘청거리며 난리가 난 상황에서 어떻게 조선 산업은 홀로 웃을 수 있었을까? 조선 산업의 시장 특성을 알면 이해할 수 있다. [편집자주]

- 글 싣는 순서 -

① 조선업의 부활 후판시장 활력...하반기 수요 '맑음'
② '사양산업' 논란, 대체 수단 '無' 시장 수요 충분
③ 한‧중 ‘인건비 격차’ 10년간 2배 유지
④ ‘표준 선박 대량생산’ 일본, 오히려 쇠락
⑤ 한국 미래는 한국의 선택에 달려있다
⑥ 韓中日 조선소, 제주도 반경 600km내 포진
⑦ 조선산업 성공의 키(key)는 '1급 제철소'
⑧ 韓 中 日 조선산업 주도 '다음 주자는?'
⑨ IMF 사태, 성장의 도약이자 몰락의 계기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수에즈막스 탱커. 사진=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수에즈막스 탱커. 사진=현대중공업

 

조선 산업은 ‘전 세계가 하나의 단일 시장’이다. 상품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구매되고 소비되기 때문에 ‘세계가 단일 시장’이라는 말이 꼭 선박에만 국한된 말은 아닌 것도 같다. 그러나 내수 시장에서와는 달리, 해외 상품을 살 때는 관세 및 통관비, 운송비 등 이른바 ‘무역 장벽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또한 해당 물품이 품질 및 안전 등 ‘로컬 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규제를 받는다. 인터넷 상거래를 통해 문턱이 매우 낮아지기는 하였지만 ‘내수 시장’은 엄연히 해당 지역의 수요-공급의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별도의 시장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상업용 선박은 목적 자체가 대양을 항해(Ocean-going)하여 국가 간의 무역을 하는 수단이니 자유롭게 국가 간 이동과 거래가 가능해야 한다. 따라서 조선소는 처음부터 ‘국제적’ 운항과 거래에 필요한 모든 규정을 준수하여 선박을 만든다. 또한 설계 및 모든 건조과정에서 ‘이해관계 독립적 감리 기관’인 선급 협회(Classification Society)의 감독을 받는다. 이렇게 선박이 완성되면 선급에서 발급하는 인증서 등 각종 국제협약 증서 및 필요 서류들을 선주에게 제공한다. 이를 통해 선주는 전 세계 어디서든 자유롭게 선박을 운행하고 거래할 수 있다.

조선 산업에는 로컬 시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존재한다. 이는 미국의 ‘존스 액트 (Jones Act)’나 중국의 ‘국수국조(國輸國造)’와 같은 폐쇄적 해운 운송 정책과, 국적 선사가 자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자국 발주’ 케이스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 단일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자국 조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지원책일 뿐 수출 시장과 독립된 내수 시장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한국과 중국, 일본이 일부 선종에 대해 수출 쿼터를 제한하는 등의 ‘폐쇄적인 공급 정책’을 추진한다면. 조선소를 보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를 ‘국가 안보적 위협’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비용이 얼마가 들든 자국 혹은 제3의 국가에 대안 조선소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메가톤급 기회의 이동’이 발생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들 때문에, 조선 시장은 내수, 수출 구분 없는 단일 시장에서 참여자 간의 무한경쟁을 통해 거래가 이루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이 추세에 큰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선박은 세계 단일시장에서 국제적 표준을 따라 거래된다. 때문에 선박 거래에서는 대부분 영문 계약서를 쓰며, 주로 ‘국제 기축 통화’인 달러화를 지불 조건으로 한다. 심지어 분쟁이 생기면 영국 런던의 중재법원으로 간다.

한국이 선진국가의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것이 1996년 12월이다. 그런데, 한국 조선 산업은 이보다 6년이나 앞선 1990년 10월에 이미 OECD WP6(경제협력개발기구조선업 이사회)회원이 되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조선 산업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자 국제 협력의 증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회원국들이 요청해 이뤄진 것이다. 이는 한국 산업 가운데 선진국 모임에 가입한 첫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산업은 IMF 사태 때 부족한 달러를 벌어들이는 효자 산업었다.

선박은 주로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조선소에는 당연히 선박 건조 대금으로 막대한 규모의 ‘달러’가 입금 된다. 이렇게 입금된 달러는 외국산 자재를 사는데 일부 다시 지출하고 나머지는 원화로 바꾸어 직원 임금과 국내산 자재 구매대금으로 사용했다.

원화 대비 달러 환율이 올랐기 때문에 환차익도 엄청났다. 달러로 받은 선박 대금은 환율 상승만큼 가치가 올라가지만 원가 지출 항목에서 원화로 지불되는 금액은 환율이 상승해도 그대로이니 조선소의 이익이 대폭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환율이 달러당 900원 일 때 계약한 선박 가격이 1억 달러, 원가는 약 90%인 9000만 달러이며, 이 중 원화로 지불되는 비용이 약 40%(3600만 달러, 환율 달러 당 900원 적용 시 324억 원) 정도 된다고 하자. 이 선박의 기대 이익은 10%인 1000만 달러로 90억 원이다. 그런데 건조 기간 중 환율이 달러당 1800원으로 2배로 뛰어 오르면, 선가(매출)의 가치는 2배인 1800억 원이 되지만 원가는 9000만 달러 중 달러로 지불하는 60%의 비용만 올라 1296억 원(달러 지불 원가는 5400만 달러 × 1800원/달러 = 972억 원, 원화 지불 원가 324억 원은 고정)이 된다. 이익이 애초 대비 5배가 넘는 504억 원이 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IMF 사태는 외환 위기였다. 국가와 기업의 달러 보유고가 바닥이 나서 생긴 일이다.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것도 금이 기축 통화인 달러처럼 원화 가치의 폭락에도 버틴 거의 유일한 자산이었기 때문에, 금을 팔아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조선소들은 그 귀한 달러를 회사마다 수십억 달러씩 선주로부터 받고 있었을 뿐 아니라 경영면에서도 천문학적인 환차익을 보고 있었다. 그 시절 조선 산업은 위상이 남달라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IMF 때 한국 조선소들이 ‘남몰래 웃었던’ 이유다.

IMF 사태 이후 한국 조선소들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한 설비 확장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하고 기반 시스템 업그레이드와 인력 확충을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기업을 합병하고 인력을 줄인 일본의 패착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그 결과, 한국 조선 산업은 200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조선-해운 수퍼사이클’의 수혜를 고스란히 받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해 나갔다. 당시 한국 조선소들의 공격적인 설비 투자는 현재까지도 중국의 도전을 막아내며 세계 1위의 시장 점유율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결정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선택이 좋은 결과만을 낳은 것은 아니다. 슈퍼사이클 이후 금융 위기와 세계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조선 산업도 구조조정을 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중소조선소들이 한꺼번에 몰락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조선 산업이 국가적 정책과 금융 지원에 얼마나 의존도가 높은 산업인지, 그리고 ‘개별 기관의 나름대로는 합리적 결정’이 ‘국가 차원의 종합적 판단’ 없이 실행이 되면 한 산업에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자료: 대한조선학회,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이종무 대우조선해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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