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칼럼] 화이트리스트 '고철버전' 피해자는 누군가
[페로칼럼] 화이트리스트 '고철버전' 피해자는 누군가
  • 김종혁 국장
  • 승인 2019.08.08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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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혁 페로타임즈 국장
김종혁 페로타임즈 국장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업체들이 ‘탈(脫)일본, 국산화’에 뜻을 모으고 열띤 논의를 진행했다.

7일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 토론회에는 관련 중소기업들이 대거 참여했다.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대기업,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중소기업은 투자와 지원을 배경으로 국산화를 급진전시킬 수 있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드러냈다. 정부는 앞서 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대책’에서 1조 원 계획을 밝히면서 강력한 지원을 약속했다. 중소기업은 후한 평가를 내리며 환영했다.

철강업계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촉발된 논의 대상에서 거리가 있다. 유독 고철만이 그것도 변방에서 반도체분야와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세관 당국이 검수에 관여하면서부터다.

지역 세관은 지난 2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부두의 고철 하역 검수를 참관했다. 부산은 태풍이 지나간 이후 피항했던 배들이 접안을 시작하면서 검수강화 소식이 전해졌다. 마산 역시 그들의 발길이 오갔다. 세관 당국의 일상적인 업무라고 보기엔 시기적으로 일본산 규제 차원으로 읽히기 쉬웠다.

선적지연이 일부 나타났고, 분위기상 배선, 신용장(LC) 개설 등 일상업무도 일시 중단됐다. 제강사들은 아무런 지장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시장을 자극(물량잠김, 가격상승 등)하지 않으려는 의지일지 모른다.

진위와 관계없이 정부와 제강사 간 긴급 회동이 있었다. 8일 한국철강협회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들 및 제강사 원료구매 담당자들이 모였다. 산자부가 업계 상황과 제강사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제강사 원료구매 담당자들은 관심과 기대감으로 참석했다. 실망스러운 반응 일색이다. 언성을 높이며 정부가 역할을 못한다는 비난도 한동안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실망감과 질책은 업무에 지장을 받고 있음을 반증한다.

고철업계는 이미 현 상황을 예측 감지하고, 지난주부터 상승 기대감을 바짝 올렸다.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물량이 잠겼다. 제강사는 국산 납품 가격을 올려줘야 할 판이고, 대량의 수입처인 일본과의 업무에도 불편이 더해졌다.

일부 제강사들은 러시아, 미국 공급사와 수입계약을 조용히 진행했다. 성약이 쉬울 리 없지만,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한 보험차원으로 업계는 해석했다.

답답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헌데 무언가 빠져있다. 제강업계의 자성의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찾아보기 힘들다. 외부에 대한 지적 일색이다. 정부에 대한 질책, 고철업계의 투기성향을 꼬집는 극도의 과민반응 등이 주류다.

비단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고철 자급률 확대, 일본의 대체재 마련 등 중장기 안정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일본 고철의 역할이 무엇이었나. 일본산 수입은 고철 수급 안정에 명분을 둔다. 실제로는 국산 납품가를 낮추는 충실한 도구이지 않았나. 일본도 이를 백분 활용했다.

품질은 어떤가. 국산보다 좋지 못한데 높은 가격에 들여온다는 핀잔을 들은 게 하루 이틀인가. 연간 400만 톤이나 되는 물량을 근거리 옆집에서 구할 수 있으니 이만한 공급처도 없다. 제강사로서는 아군이나 다름 없다.

늘 지적되는 제강사의 낮은 납품가, 구매정책 등이 자급률 향상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철 유통업체는 물론이거니와 길로틴 등 설비를 투자해 품질향상에 힘을 쏟는 가공업체마저 제강사 구매정책에 반감을 높이는 원인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반도체 국산화를 위한 토론에서 대기업들이 해외 제품과 비교한 가격 등에 초점을 두다보니 국산화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기업들의 구매방향이 국산화를 좌우하는 핵심이라는 얘기다.

고철 역시 제강사들이 국산의 값어치를 어떻게 산정하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자급률 향상에 영향을 준다. 상생 협력을 실현하고 지원이 있다면 고철업계도 일본산을 대체하는 데 크고 작은 힘을 모을 것이다.

온 나라, 전 세계가 떠들석한 형국에, 이번에도 고철기업들은 소외됐다. 우리나라 고철에 관한 문제라면 앞으로는 고철기업의 경영인, 전문가들을 초정해 ‘고철 국산화’를 놓고 진중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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